“김대중, 라이벌은 있었지만 적은 없었다”

최경환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 한신대 특강

뉴민주.com | 기사입력 2009/11/07 [08:10]

“김대중, 라이벌은 있었지만 적은 없었다”

최경환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 한신대 특강

뉴민주.com | 입력 : 2009/11/07 [08:10]
김대중 전 대통령을 10년간 보좌했던 최경환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는 11월 6일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화․연합의 정치 리더십”이란 주제로 특강을 했다. 그는 이 특강에서 “김 대통령은 민주주의에는 “라이벌은 있지만, 적은 없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대화를 거부하고 일방주의로 가는 세력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반면 민주적 대화가 가능한 집단에 대해서는 적극적 대화를 통해 경쟁했다. 이처럼 우리는 경쟁이 아닌, 적대로 끌고 가는 정치는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특강의 주요 내용이다.

최경환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 한신대 특강 주요 내용

현대 대중사회의 리더십은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 과거처럼 총이나, 돈이나, 권력으로 리더십은 유지되지 않는다. 말과 글은 소통의 기술이면서도, 리더십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화의 정치인이었고, 말과 글의 정치인이었다. 독서와 사색을 통해 심화된 자신의 정책과 사상을 말과 글로 표현하고, 대화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고자 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김상문 기자
그러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에는 말과 글, 대화의 정치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폭력, 쿠데타, 돈, 언론통제로 점철된 정치였다. 독재정권 시절 김대중의 말과 글은 항상 폭력, 돈의 정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화의 정치, 말의 정치를 갈망하던 국민들은 “김대중 말이나 들어보자”고 연설회장에 모여들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철저한 의회주의자였다. 의회란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이 말을 가지고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곳이다. 의회가 민주주의 제도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는 국민 대화의 장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러한 의회의 역할과 기능을 민주주의의 참모습으로 보았다. 국회에서 말로 정부에 따지고 자신의 정책을 제시할 때 국민들이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이 국가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정치적 입장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야당의 경우 원외투쟁의 유혹이 많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원외투쟁은 상대를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했다. 국회를 포기하거나 의원직을 내던지는 행위는 정치적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선출한 국민의 뜻을 어기는 행위로 보았다. 대화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들이 자기를 뽑은 유권자와 대화하면서 다른 집단과 대화하는 정치를 원한다. 

지식정보화 사회는 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 다양한 대화수단을 제공한다. 지도자들은 이러한 대화수단에 적응하고 활용하는 대화의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 직접, 혹은 미디어를 통해 국민과 만났으며, 변화하고 발전하는 매체에 적응하는 자기 훈련을 쉬지 않았다.

대화 정치가 실종하면 국민은 항상 다른 수단을 찾는다. 2008년 봄 촛불집회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제도정치권과의 소통에 불만을 느꼈다. 대중 스스로 인터넷을 통해 서로 대화하고 의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댓글과 문자메시지를 통해 정치적 행동으로까지 나선 것이다. 

“대화가 성공의 무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화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은 국제정치 영역이다. 김 대통령은 1970년대 소련과 동구라파를 자유화, 민주화의 바람으로 몰고 간 것은 서방세계의 압박과 제제도 아니고, 헬싱키 프로세스에 의한 양진영의 대화와 교류였다고 주장한다. 공산 중국 역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모택동과 대화를 함으로써 등소평이 출현해 개혁개방으로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도 마찬가지다. 대화와 교류를 통해서만이 북한과 같은 폐쇄사회, 공산국가를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8년 9월 노르웨이 스타방게르에서 <노벨평화상수상자정상회의>가 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기에 참석해 ‘대화의 힘-공동이익을 목표로 하는 상호주의 대화’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성공의 무기는 공동이익에 기초한 대화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말할 능력을 주었다. 하느님은 우리가 말을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역사적 교훈을 통해 우리는 모든 갈등은 평화적 대화를 통해서, 공동이익의 기반 위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공동 이익은 대화 성공의 불가결한 조건이다. 이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준 지상과제이기도 하다. 지금 중동이나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지역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무력대결도 무력만 가지고는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오직 공동이익을 전제로 한 평화적 대화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역사는 세계화 시대인 21세기의 인류에게 더한층의 많은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공동승리의 대화이다. ‘햇볕정책’이다.

한반도 현안인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2002년 2월 서울을 방문한 부시 대통령을 향해 “대화란 친구하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부르면서도 그들과 대화했다”며 북한과의 대화를 촉구한 일은 유명하다. 

최근 임동원 전통일부장관은 강연(2009.10.29, <통일뉴스> 창간기념 강연)에서 “지난 20년간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과 접근방법으로 화해 협력의 대북포용정책과 평화의 프로세스(김대중-클린턴 프로세스)와 적대적 대결정책과 굴복을 강요하는 압박과 제재의 프로세스(부시-네오콘 프로세스)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부시-네오콘 프로세스’는 실패했다. 오바마 정권은 ‘김대중-클린턴 프로세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클린턴 프로세스’의 핵심은 ‘대화’에 있다. 

“민주적 좌파와 민주적 우파는 양립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후 보수진영은 진보개혁진영을 향해 ‘친북좌파’라며 공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러한 이념공세는 ‘정치적으로 졸렬한 짓’이고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좌파라고 하면서 사실은 ‘공산주의 한다’는 냄새를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좌파라는 말이 마치 큰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 노동당도 좌파인데 정권 잡았고, 독일 사민당도, 프랑스 사회당도 좌파인데 정권 잡았다. 유럽에는 수두룩하다. 유럽 어느 나라고 정권 잡지 않은 나라가 없다. 그런데 지금 실제로는 좌파건, 우파건 다 중도통합의 시대다. 그래서 지금 좌파, 우파 찾는 것은 냉전 사고에서도 케케묵은 것이다.”(<오마이뉴스> 회견, 2007.11.14)

김대중 전 대통령은 좌파에도 ‘민주적 좌파’가 있고 ‘독재적 좌파’가 있으며, 우파에도 ‘민주적 우파’가 있고 ‘독재적 우파’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민주적 좌파’와 ‘민주적 우파’는 양립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의 사민당, 미국의 민주당은 ‘민주적 좌파’이며, 우리나라의 한나라당, 미국의 공화당, 일본의 자민당은 ‘민주적 우파’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민주적 우파’는 ‘자유’만 주장하고, ‘민주적 좌파’는 ‘빵’만 주장했는데, 국민이 ‘빵’과 ‘자유’를 다 달라고 하자 서로 상대방의 주장, 우파는 ‘빵’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좌파는 ‘자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민주적 좌파’와 ‘민주적 우파’가 같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좌파를 공산주의로 몰아세우고, 국법에 의해 처벌하려 한다면 그것은 일당 독재를 하자는 것이다.”(2008.8.10 KBS <일요진단> 출연)

김 대통령은 민주주의에는 “라이벌은 있지만, 적은 없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대화를 거부하고 일방주의로 가는 세력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반면 민주적 대화가 가능한 집단에 대해서는 적극적 대화를 통해 경쟁했다. 이처럼 우리는 경쟁이 아닌, 적대로 끌고 가는 정치는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자기를 버리고 크게 연대하라”

김대중 전대통령은 병석에 있으면서도 민주개혁진영의 ‘단결’과 ‘연합’을 유언처럼 강조했다. 이른바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3대위기(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개혁진영의 단결과 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오랜 정치생활에서 수차례 연합을 추구했다. 이를 통해 야당 세력을 통합하고 재야세력과 젊은 신인을 정치에 충원하며 힘을 키웠다. 여당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치지형, 즉 지지기반의 열세, 재정기반의 취약, 적대적인 언론환경을 통합과 연합을 통해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1997년 정권교체도 이른바 ‘DJP 연합’을 통해 이룩했다. 한 정치학자는 DJP 연합을 “한국정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압권”(<신동아> 1998년 1월호, 전인권, ‘한국정치의 기적, 끝내 꽃피운 인동초’)이라고도 표현했다.

‘야합’과 ‘연합’은 다르다. ‘야합’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 즉 자신의 정치이념과 정책을 바꾸거나 포기하며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다. 반면 ‘연합’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는 정치전략이고, 기술이다. 또한 ‘연합’은 국민의 의사와 요구를 기초로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가 이룩한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신장, IMF 외환위기 극복과 지식정보화, 남북화해협력, ‘기초생활보장제’와 ‘생산적 복지’ 등의 업적을 볼 때 DJP 연합이 정치적 정체성까지 팔아버린 야합이었다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또한 이러한 연합의 사례는 선진국 정치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문제는 연합을 어떻게 이룰까 하는 방법이다. 연합에서 항상 따르는 문제가 이익을 나누는 지분협상이다. 연합을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하다. 김 전대통령은 입원하기 직전 완곡한 표현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았다.

“자기를 버리면서 (큰 틀로)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크니까 7을 차지하고 나머지 3을 (연대에 참여하는 세력들이) 나눠 가지라는 식으로 해선 곤란하다.” (2009.6.16, 이해찬․한명숙 등 초청 오찬)

“(협력하고 있는 타 정파에) 30,40석을 양보해서 우리가 60석을 얻어 모두 100석을 얻을 것인지, 따로따로 나가서 40석만 얻을 것인지 그것은 분명하다. 빈손으로 말 것인지, 아니면 전체 10개중 5개라도 얻어서 2,3개씩이라도 나눠 갖는 것이 나은지 그것은 분명하다.” (2009.6.20, 비서관들과의 <토요강의>)

김 전 대통령은 통합, 연합의 과정에서 지분의 절반을 양보하는 일이 많았다. DJP 연합도 정확히 50대 50의 지분협상으로 이뤄졌다. 우리 세력이 많으니까 많이 갖고 상대방은 적으니까 적게 갖는 협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2분의 1로 축소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커졌다. 그렇게 해서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룩할 수 있었다.

대화의 정치, 연합의 정치를 기대하며

대화를 통해 경쟁하는 정치야말로 민주정치이다. 이념과 정책이 다른 정파일수록 대화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 대화를 소홀히 할 때 국민은 외면한다. 충돌과 폭력은 더욱 국민을 떠나게 한다. 또한 말과 대화의 정치는 공정한 언론기능이 살아있을 때 빛난다. 말과 대화를 왜곡하는 권력의 언론장악이나 통제 행위는 대화 정치의 적이다.

정파 내부의 대화 또한 중요하다. 미국의 민주당은 2001년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에 권력을 빼앗긴 후 의욕을 잃고 조직은 지리멸렬해졌다. 이라크 침공 등 부시 정부의 실책이 쏟아지면서 미국의 민주당은 지역별 소모임이 활성화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당원들 사이에 반(反)부시와 민주당의 진보가치를 토론한다. 이 대화와 지역별 토론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오바마 대통령이다. 1,500 차례의 지역별 대화모임을 주도하면서 재집권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대화의 힘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년전 386 의원들을 향해 “베낭을 메고 전국을 돌며 국민들과 대화하라”고 권고했다. 지금도 그 말은 유효하다.

지금 민주개혁진영은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는 민주개혁진영을 지지하는 세력을 포함한 국민들과의 대화에 성공하는 것이다. 정책과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정치적 목표에 대한 열망을 조직하는 것이다. 둘째는 민주개혁진영의 대통합과 대연합을 이룩하는 것이다. 향후 정치일정에서 국민들의 통합․연합 요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서 민주개혁진영이 지지자들과 국민에게 감동을 선물할 경우 민주개혁진영은 빠른 속도로 지지를 회복하면서 대안세력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답답하고 지지부진한 정체를 계속하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화의 정치, 연합의 정치 리더십은 지금 우리 정치권에도 교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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