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태양-한국문명 진단

동방의 태양,고대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를 비추다 !

뉴민주.com | 기사입력 2010/09/19 [21:33]

동방의 태양-한국문명 진단

동방의 태양,고대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를 비추다 !

뉴민주.com | 입력 : 2010/09/19 [21:33]
 


▲ 동방족(한반도사람들=한국인들)은 3신1체 하나님을 신앙한 태양족


인도시성 타골이 얼마나 우리나라(Korea)를 그리워하였는지 그의 시 한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한국이 ‘홍익인간’사상과 ‘신선의 나라’ ‘지상낙원’과 같은 나라였음을 노래하고 있는 듯 하다. 그의 시를 감상하면서 위대한 <한국문명>의 존재를 확인해 보자.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에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인도시성 타고르가 역사를 모르고 저런 소리를 했겠는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과 매우 밀접

한 관계가 있는 인도의 구자랏 지방의 구자랏어도 우리 한글의 모태가 되어있는 가림토 글자

에서 나왔다고 한다. 가림토 글자는 한단고기 단군세기 편에 기원전 2181년 경자2년에 이 글

자를 창제하게 된 과정이 기록되어있다.














આજે નસીબ સારું છે!" બટન, આપને આપની શોધના પ્રથમ વેબ પાના પર લઇ જશે. આજે નસીબ સારું છે!" એટલે શોધવામાં ઓછો અને વાંચવાનો વધુ સમય.

▲인도 구자랏문자-한글을 휘갈긴 것 처럼 보인다

1번 고대한국(환국) - 한인(환인)님의 나라

2번 배달국 - 한웅(환웅)님의 나라

3번 단군조선  -한검님의 나라




▲[한단고기]천해동쪽 12한국-동방나라들(중동의 슈메르인들도 동방족)



'헬리코박터균'의 분포로 본 과거의 인류이동(Traces of Human Migrations in Helicobacter pylori Populations)- 세계최고의 학술지라는 사이언스 2003년 3월 7일자에 실린 연구논문
  
[헬리코박터균]의 유전적 분포 지도(노란색이 동아시아 고유의 헬리코박터균을 가진 사람들)
 
[헬리코박터균]은 사람의 위속에 살고 있다.고대 동아시아 바이칼호수 주변 추정에서 오래도록 고립되어 살
아서 생긴 것으로 동아시아 고유의 헬리코박터균(노란색)을  가진 사람들이 한반도, 만주, 중국 북동부에 가장 많은 비율로 있다. 이것은 바이칼인들의 이동경로를 말해준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인디언이 되었으며(13번,14번),더욱 내려가 남미 인디오들의 조상이 되었
으며(16번,17번),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한국인에게는 유럽이나 아프리카 고유의 유전자가 없고,오로지 동아시아형 고유 유전자
만이 있다는 것이,같은 논문에 나오는 아래표다.그것은 백인종들과 피를 섞지 않은 한반도인들이 아시아인들의 원형유전자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위의 표에서 1번이 한국인데,특히 한국인에게서는 오로지 동북아시아 고유유전자만 나타난다.그러므로 한국인은 동방족의 원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군신화]상징의 의미는 바이칼 호수지역의 한국에서 내려 온 한웅족이 만주지역의 곰족과 융합하여 단군
족을 형성했다는 의미가 된다. 유목생활을 하던 한인.한웅족이 맥족으로 기록한 코리족이다. 농경과 수렵생활을 하던 곰.호족은 예족에 속한다.그리고 한반도지역에서 농경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오지리날 한민족의 조상들로 환족이라 한다.  



▲지나문명을 꽃피우게 한 발원지-홍산 배달문화지역


단군역사에 나오는 '곰'은 곰을 상징동물로 하던 부족을 말하는 것이다. 산동지역의 대문구 문명과 마찬가지로 당시 요하지역의 부족은 지도자가 대체로 여성으로 마고문화를 계승한 모계문명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여신상.신전.옥 유물 등 요하지역의 홍산문명과 산동지역의 대문구 문명의 유물유적 참조)
 
즉,오늘날 한민족은 바이칼 호수지역에서 내려 온  환족(한웅족)과 원래 만주 한반도에 살던 곰족이 만나서 결합한 민족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겠다. 
 
시베리아가 러시아의 영토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고,비교적 근래까지 시베리아는 러시아, 지나국 등 현재 있는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었다.시베리아.연해주지역은 단군조선.부여.고구려.대진국의 유적.유물로 가득하며, 수렵생활을 하고 있는 말갈족은 자신들을 지나인들과는 혈통이 다르고 한반도인들과 같은 혈통이라고 말하고, 역사교과서에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사이언스] 2003년 4월25일 자에 발표된 <농사와 언어의 최초의 전파( Farmers and Their Languages: The First Expansions)>라는 제목의 논문에 나오는 지도그림이다.
 
위 그림은 고대 세계문명과 언어의 뿌리가 동북아시아 지역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조상어는 한반도인들의 사투리다.서양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영어는 인도-유럽어족으로 고대 한국어의 갈래다.즉,중앙 아시아에서 인도-유럽으로 이동하여 인도-유럽문명을 부흥시킨 아리안(아리랑)족의 산스크리트어인데, 이게 고대 한반도 사투리다.산스크리트어는 불교에서 범어로 사용하고 있다. 드라비다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전라도 사투리가 많다. 드라비다인들은 본래 슈메르인들인데, 인도지역으로 이주하여 인더스 문명을 건설한 주역이다. 환인을 민족신으로 섬기는 아리랑(아리안)족의 유입으로 인도 남부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현재 인도의 계급제도를 만든 종족이 바로 인도-유럽어족인 아리안(아리랑)족이다.
 
위 그림에서 보아도 원래 만리장성 위의 시베리아-만주는 중국의 화하족이 오랑캐들의 땅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중국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리장성은 북방의 유목민들의 침략을 막기위해 진시황때부터 명나라때까지 건설한 성인데, 사실 만리장성의 의미는 북방 초원지역에서 유목수렵생활을 하는 한국인들과 황하지역에서 농경생활을 하는 한국인들과의 전쟁의 상징이라함이 맞다 하겠다. 중국의 문명을 일으킨 주역들이 태호복희.소호금천씨 등 만주에서 산동지역으로 내려온 고대 배달나라출신의 한국인들이고, 화하족의 우두머리가 되어 치우천황에게 반항한 황제헌원도 따지고 보면 동방족출신이다. 중국과 동방은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의 패권전쟁을 계기로 한국인들의 양분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만주를 터전으로 삼는 동방은 중국.슈메르.유럽.아메리카문명을 낳은 어머니땅이라는 역사적 진실은 변할 수 없는 역사의 진리다.

또 위 그림에도 나오듯이 한국어는 원래 바이칼호수 부근 지역에서 쓰던 [알타이어]가 전해져 온 것이고,
그 언어와 문명을 가지고 온 분들이 대표적으로 [환웅(한웅)님과 그 일행]이라 하겠습니다. 

대략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시베리아-만주-한국어 즉 알타이어와 중국어가 갈라지고 있다.서로 열리지 않고 막히게 되면 자신들만의 문화와 언어로 귀착되기 마련이다. 오늘날 중국.한국.일본이 역사적으로 동일한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언어가 달라지게 되는 배경이다. 남북한도 교류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38선으로 분리되면 결국 문화와 언어가 이질적으로 변하게 된다. 남북화해협력교류의 중요성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고대에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중앙아시아와 중동(아랍)으로 언어와 농사문명을 가진 사람들의 이동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세계농경문화의 시작은 엄청난 인구밀도가 있어야 가능한 고인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옥한 땅에 인구밀도가 가장 높았던 한반도다. 인구밀도가 높고 먹을거리가 많으면 문화또한 다른 지역보다 일찍 발전하게 된다. 홍산문화로 불리우는 요하문명의 시발점을 한반도로 인식해야 하는 배경이다. 한반도지역에서는 1만5천년 전 세계최초의 볍씨가 충북 청원에서 출토되어 한반도지역에 1만년을 전후하여 가장 먼저 농경문화가 발전한 지역임을 입증했다. 



1-2만년전 현인류문명을 기준으로 한반도가 자랑하는 세계 최초 최고

0.한글.한자의 기원이 되는 세계최초 녹도문자개발(신시배달국 신시)


1. 배만들기(조선) 세계 최초 - 8천년전 (경남 창녕군 부곡면 출토)

2. 고래잡이 세계 최초 - 8천년전 (경남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3. 쌀농사 세계 최초 - 1만 5천년전 (충북 청원군 출토)

4. 신석기 세계 최초 - 2만년전 (전남 장흥군 출토)

5. 토기 세계 최초 - 1만 수천년전 (제주도 고산리 출토)

6. 고인돌 세계 최초 - 8천년전 (전남 화순군)

7. 빗살무늬토기 세계 최초 - 8천년전 (강원도 양양군 출토)

8.세계최초 금속활자-직지심경

9.세계최초 전함에 화약함포설치(고려 최무선)

10.세계최초 철갑 거북선(조선 이순신수군)

11.세계최초로 과학적인 문자 한글개발(조선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

12.세계최초 배아줄기세포 원천기술개발(대한민국 황우석연구팀) 





▲빗살무늬토기 문화권 지도-한반도는 양날개인 유라시아.아메리카 문명의 머리가 된다


1만 5천년 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충북 청원에서 출토-벼농사는 비옥한 한반도에서 시작되었다. 한반도는 본래 땅이 비옥하여 인구밀도가 높고 농경.수렵문화가 일찍 발달하였다.많인 인원이 동원되야 만들 수 있는 수 천 수만기의 고인돌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농경문화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태양숭배와 제천의식을 낳았다. 고인돌.피라미드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고 세계로 전파된 것이다.
 



▲경남 창녕군에서 발굴.8천여 년전의 배로 세계 최고 선박-고대 한국인들은 해양족

사실 동방족(한반도사람들=마한족)은 동남아시아까지 22담로를 설치한 백제(서남해 지역 마한인들의 선박술과 항해술의 도움)와 장보고의 동아시아 제해 해상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원래 해양족이었다.  


▲세계 고인돌분포도(노란색이 고인돌지역)-한반도는 세계 고인돌의70%을 점유하고 있다


 

고인돌연구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동방족들은 서쪽으로 항해하면서 베트남(Vietnam)을 거쳐 인도(India) 북부, 그리고 팔레스타인(Palestine) 지역, 그 다음에 이디오피아(Ethiopia), 그리고는 지중해(地中海)에서 위력을 과시하였다.
 
이스라엘(Israel)을 비롯하여 요르단(Jordan), 그리고 터어키(Turkey) 중부, 러시아(Russia) 남부의 흑해(黑海) 연안 까프까즈 지방까지 배를 통하여 그들의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지중해 연안의 유럽인(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동부)들의 원조들은 이 동방족의 고인돌에서부터 영향을 받아 점차 더욱 커다란 고인돌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곧이어 대규모의 거석 건축물들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중해로 이주한 일부 동이족들은 알프스(Alps) 계곡을 지나 독일(Germany) 남부로 들어가 또 다른 세계를 구축했다. 그 가운데 일부가 현재의 영국(Scotland)과 아일랜드(Ireland)로 건너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 그러니 브리튼(Britain) 섬에서의 둘레돌(環狀列石, Stone Circle)은 우선 이베리아(Iberia) 반도인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다시 동이족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독일 히틀러 시대 독일장교 옷카라에 달린 게르만족 제일주의를 상징한 마크의 원형인성인[무]자.참고로 독일의 조

상들인 게르만족은 고대에 서진한 동방족들과 백인족과의 혼혈족이다.성인[무]자와 황제[제]자는 피라미드와 관계있
습니다.즉,왕.성인.지도자 등을 의미하는 뜻으로 피라미드속에 묻힌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피라미드 위에서 보면 모양
을 본 뜬 갑골문자인 [무][제][전]자가 나온다. 


▲제사에 사용된 세계 검들의 원형-수천년전 한국돌칼(마제석검)
 
국립대구박물관이 (2005 년 6월 ) 21일부터 7월 3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여는 특별전 ‘머나먼 진화의 여정―


사람과 돌’은 구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선사 시대인들의 삶과 함께 했던 1000여점의 석기(石器)를

한데 모아 전시했던 장면이다.
 
고인돌과 검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은 물론이고, 전세계에서 유일하

게 직검의 원형(原型)인 돌단검(石短劍, 磨製石劍)이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진시황(秦始皇)의 무덤

에서 출토된 보검(寶劍)도 직인검(直刃劍)이 아닌 곡인검(曲刃劍)으로서, 한반도와 요동지역에서만 출토되

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에서 변형된 것이다. 또한 이 비파형동검도 요동(遼東)지역이 아닌 남한에서 출

토되는 돌단검에서 변형된 것으로, 돌단검의 검날(劍身)과 검자루(劍把)가 함께 이어지고 여기에 다시 또 다

른 검자루가 덧붙여지면서 만들어진 형태다.
 
그러니까 요동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단검은 바로 남한의 남해안 지역에서 먼저 만들어지고, 그 후에 요동에

서 대량으로 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코카사스와 그리이스에서 출토된 청동검들은 한반도 남해안에서 출

토되는 비파형단검의 변형으로 입사귀와 비슷한 엽인검(葉刃劍)이며, 영국과 유럽에서 출토되는 직인검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만들어진 돌단검과 형태가 비슷하다. 서남해 마고문명을 계승한 고대 한반도인들의 이동과 <한>문화전파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 초기형태

 



 

▲ 피라미드 구조도-한반도 남방식 고인돌 양식=>백두산 지역 피라미드=>홍산지역 피라미드=>서안.티벳.중동.이집

트.남미 등 한반도지역에서 유라시아.아메리카 지역으로 피라미드 양식로 전파되었다.
 


 

▲19c 조선말에 선교사들이 찍은 한국의 풍경.장승앞에서 소원을 비는 모습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장승-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조상이 한반도사람들(마한족)임을 알 수 있다.인디언들은 한반도인

들처럼 짚신.절구통.대금을 사용하고 윷놀이를 하며 놀았다.





▲인디언들의 유물들이 전시된 미국 박물관 


 



 

▲[한단고기]12한국연방(중동지역으로 이주한 슈메르인들도 고대 한국인들)

 
▲동북아시아에서 이주하여 중동에 정착한 슈메르인들의 씨름석상-고구려 씨름도와 같다


 

고구려 각저총 씨름도-슈메르인들의 씨름모습과 같다. 머리가 검은 슈메르인들은 한국인들과 동일하게 10진

법.12황도.쐐기형으로 발전시킨 갑골문자.순장.곰숭배.피라미드 문화를 공유하며 서양문명의 뿌리가 되었으

며, 인도의 드라비다족으로 불리우는 슈메르인들의 일부는 인도로 이주하여 인더스문명을 건설하기도 하였

다. 이들 드라비다인들이 사용한 언어가 바로 한반도 사투리(전라도사투리)다. 따라서 슈메르(소머리)인들

은 한반도인들의 후예들임을 알 수 있다. 12한국 중 홍산배달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하문명지역에 속한

수밀이국은 한국말기인 기원전 4,000년 경에 초원길을 따라서 중동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슈메르 초기유적지에 해당하는 자모르 유적지에서는 편두를 한 몽골리언 유골들이 발견되어 동방에서 이주

해 온 민족임을 입증했다.그러나, 서양인류학자들은 동양에 대한 역사.문명의 열등감때문에 외계문명운운하

면서 애써 부인하려 한다. 외계문명이라도 하더라도 우주까지 나는 비행접시까지 존재했을 정도로 초과학문

명이였다는 무(마)문명을 계승한 고대  한국문명이라 할 수 있다.



 

위 석상들은 '티우'(Tiu=치우)라는 먼 옛날 미스테리한 선조에 대한 전설을 갖고 있는 이집트 정복자들. Tiu

(티우=치우)는 이집트 창건의 전설적 왕족의 인물상이다. 슈메르문명 후대에 건설된 피라미드 문명족으로

조상을 치우(티우)로 모신다면 탁록전쟁이후 중동으로 이주한 치우족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피라미드는 한

웅의 신시(피라미드 도시)로 대변되는 배달국 시대의 정치.종교문화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의 제기용 그릇(좌).유럽 켈트족과 기독교문양(우) 


일목삼신어 부적]


이집트를 창건한  주역은 티우(치우)의 후예다.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들이라고 했다.그리고 한국의 전통부적

인 3목어 문양을 똑같이 갖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1,000년이나 오래된 피라미드는 요하지역 피라미드

다. 또한 요하 피라미드보다 오래된 피라미드는 지나국이 고구려 무덤들로 왜곡은폐하고 있지만, 압록강변

집안지역의 1만5천기의 초기 피라미드다.압록강변의 피라미드 원형은 산악지대의 적석총과 초원 유목민들

의 적석목곽분의 원형이 되는 한반도 남방식 고인돌 양식이다. 



 

▲동양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집트 스핑크스상

 


 

처녀잉태-고난-십자가죽음-부활이라는 예수신화의 원형 이집트 호루스-머리에 태양이 있다. 이집트 피라미

드를 건설한 주역은 고대 한국인들(치우왕족)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태양족이라고 불렀다. 이들이 사용한 제

사용 그릇에 3마리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데,한국의 전통부적(3목어)과 같다. 서양문명의 뿌리와 기독경설화

와 기독교 사상의 뿌리는 슈메르다.슈메르인들은 체형과 풍습과 언어가 한국인들과 동일하다. 
 



 

▲한반도 선돌-고인돌과 함게 세계 거석문화의 원조


 

▲이집트에 정착한 고대 한국인들이 한반도선돌모형으로 세웠던 오벨리스크

 


 

▲프랑스가 이집트에서 훔쳐다 세운 오벨리스크

 



▲이집트 선돌을 흉내내서 세계에서 가장 크게 세운 미국 워싱턴 기념비(미국의 열등감)


 



고대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에 빛을 비추던 태양 
동방족이여!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라!
민족자주주권 자유민주주의 국민복지 인류공영



알이랑 알이랑 알알이요 알이랑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알(태양)+이(그 사람)+랑(함께)=태양같은 사람과 함께=환인과 함께

 

한라에서 흑룡강까지 한민족은 하나다!

 



 
양자강에서 흑룡강까지 한민족은 하나다! 

▲ 한국의 꽃-무궁화(한화.훈화초)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유래

예로부터 상당히 광범한 지역에 관상수로 재배되어 온 무궁화는 우리 나라에 자생하고 있었으며,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 내는 꽃으로 인식되면서 나라꽃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무궁화가 나라꽃임을 알고 있으나, 그 근거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 문헌에는 무궁화가 우리의 꽃임을 명시하고 있으나 국화로 제정된 정확한 근거에 관해서는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무궁화가 우리 민족과 연관되어 나타난 것은 역사적으로 그 연윈이
 한국시대까지 거슬러 1만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선군(환인천제)은 만리를 능히 다스려 한소리에 말없이 행동으로 옮겨지니, 즉 여기에 이르러 만방의 백성들이 기약하지 않고서도 와서 모이는 자 수만이더라. 무리는 저절로 환무하며 저절로 환인을 추대하여 환화(무궁화)가 피어난 돌무지위에 앉으시게 하더니, 그에게 줄지어 경배하고 환호가 넘쳐 흐르니 이를 인간 최초의 우두머리라고 한다...옛날에 한국이 있었는데 무리는 풍족하고 풍부하였다. 처음 한인께서 천산에 사시면서 도를 얻으시사 몸을 다스려 병도 없고 하늘에 대신하여 교화를 일으켜 사람으로 하여금 전쟁도 없게 하시고, 사람마다 모두 힘써 일함으로써 근면하여 스스로 굶주림도 추위도 없게 하였다. 혁서한인, 고시리한인,주우양한인,석제임한인, 구을리 한인에 전하여 지위리한인에 이르니 혹은 단안이라 한다. 7세를 전하여 3301년에 이르고 혹은 6만3천1백82년이라고도 한다"[한단고기-태백일사-한국본기]
 
우리 나라의 상고시대를 재조명하고 있는 [단기고사]에는 무궁화를 '근수'라 하고 있으며, [환단고기]에는 '환화','천지화'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규원사화]에는 '훈화'로 표현하여 단군시대에 무궁화가 자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고대 지나국의 지리서인 [산해경]에는 물론 [고금주]등에도 우리 한반도가 무궁화가 많은 나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혜공왕 때와 고려 예종 때에는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서 우리 나라를 '근화향'이라 표현할 만큼 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이홍직의 [국어대사전]에 "무궁화는 조선말부터 우리 나라 국화로 되었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를 옛부터 '근역' 또는 '무궁화 삼천리'라 한 것으로 보아 선인들도 무궁화를 몹시 사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라고되어 있다.
 
1928년 발행된 [별건곤]3권 2호에 게재된 <조선산 화초와 동물>편에는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무궁화는 꽃으로 개화기가 무궁하다 안이할 수 없을 만치 참으로 장구하며 그 꽃의 형상이 엄연하고 미려하고 정조있고 결백함은 실로 민족성을 그리여 내었다. 한국을 막론하고 각 민족을 대표하는 꽃이 있지만 우리를 대표하는 무궁화 같이 형으로나 질으로나 적합한 것은 볼 수 없다"고 실려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이 많이 심고 가꾸었을뿐 아니라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가 쓴 [풍류한국]에 보면 프랑스.영국.지나국 등 세계의 모든 나라꽃이 그들의 황실이나 귀족의 상징이 전체 국민의 꽃으로 만들어졌으나, 우리의 무궁화만은 유일하게도 황실의 이화가 아닌 백성의 꽃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졌고 무궁화는 평민의 꽃이며 민주전통의 부분이라 쓰고 있다.
 
우리 민족과 무궁화를 결부시켜서 이야기한 것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고, 1896년 독립협회가 추진한 독립문 주춧돌을 놓는 의식 때 부른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내용이 담겨질 만큼 무궁화를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무궁화가 우리 국민과 애환을 같이하며 겨레의 얼로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확고히 부각되었고,고통 속의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역사와 더불어 자연스레 겨레의 꽃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뉴 민 주 닷 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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