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세계전략' 두꺼운 책을 들고

<김민석 퇴수일기> 나의 북경시대

김민석 | 기사입력 2007/03/17 [13:11]

'중국의 세계전략' 두꺼운 책을 들고

<김민석 퇴수일기> 나의 북경시대

김민석 | 입력 : 2007/03/17 [13:11]

오랜만에 서울 맛을 한 달 정도 보고나서 다시 중국으로 향했다. 지난 몇 년간 상해, 뉴욕을 거쳐 올 한 해는 북경에 있게 되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북경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내년이면 3년여의 공부를 마치고 서울로 가게 되니 어쩌면 올 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또 한 번의 분기점이 될 지도 모르겠다.

 

3월 5일이 개강이었다. 올 1년은 청화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해 개설한 중국법 석사과정(LL.M) 공부를 하게 됐다. 이 과정은 중국에서는 처음 개설된 것으로 올해가 3년째이다. 북경대학도 올해부터 이 과정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아직 첫해라 그런지 학생 수가 5명 전후라고 한다.

이번 학기에 나와 함께 청화대의 프로그램에 등록한 학생 수는 24명이다. 80%가 변호사인데 미국출신이 가장 많고, 나머지는 캐나다, 스위스, 호주,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에서 온 친구들로 한국 출신은 내가 처음이다.

수업은 대부분 영어와 일부 중국어로 진행된다. 대학창립부터 해외유학에 주안점을 두었던 청화대학의 개성 때문인지 교수진의 영어수준이 생각 이상으로 높다. 모택동의 모교인 북경대가 전통적으로 문과가 강하다면, 후진타오 등 현 중국 지도부의 상당수를 배출한 청화대는 이과가 강하다. 법대의 경우, 다른 학교 출신이 거의 없는 북경대와 달리 다른 학교 출신이 대부분인 청화대의 경우 좀 더 개방적 분위기라고나 할까?


나는 1인실 기숙사에 둥지를 틀었다. 샤워를 간신히 할 공간이 있는 자그마한 욕실을 제외하면, 침대와 책상 외에 두 평이 될까 말까 한 공간이다. 이 근처는 북경대와 청화대 등 대학이 몰려 있는 곳이라 학교 부근에 유학생을 주고객으로 하는 아파트가 제법 있지만 나는 원래 출퇴근(등하교?)거리가 먼 것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기숙사에 자리를 잡았다.

방 하나짜리 아파트도 한 달에 중국돈 4-5천원은 넘는 모양이니 경제적으로도 훨씬 실리적인 선택이었다. (1인용 기숙사는 한달에 중국돈 약 2천2백원, 한국 돈으로는 약 25만원. 게다가 전기세와 수도료를 안내는 이점이 있다). 이 방에서 1년 동안 살아가기 위해 소형 냉장고와 전기밥통, 간이 수납장, 후라이팬, 토스터기, 밥그릇, 국그릇을 다 사다놓고 침대시트까지 깔끔한 것으로 갈아놓으니 그런대로 홀아비 살림하는 폼이 난다.

아무래도 인테리어(좀 거창한 표현이지만)가 허하게 느껴져서 침대 옆 벽에다 세계지도를 붙여놓으니 화룡점정이다. 20여 년 전 감옥의 딱 이만한 독방에 있을 때 세계지도와 한국지도를 붙여놓았던 노하우인데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세계지도를 자주, 그것도 보는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보기를 권한다. 이제 내친 김에 요리책을 몇 권 구해서 요리솜씨만 연마하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무슨 학교가 이렇게 횅하게 넓은지 기숙사에서 교실까지 도보로 족히 30분 거리는 되나보다. 결국 대부분의 중국학생들이 그렇게 하듯 나도 자전거를 하나 장만했다. 분실사고가 많으니 제일 싼 190원 짜리를 사라는 일부의 권유도 있었지만, 그래도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어 무려 250원(우리 돈3만원 쯤)짜리를 샀다. 수업 시작하고 첫 며칠은 자전거로 10분 걸리는 거리를 하루에 몇 차례 바삐 왔다갔다 하고나면 저녁에 다리가 후들거려서 이거 원 내가 공부를 하러 온 건지 운동선수가 되러 온 건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불과 며칠 만에 다리 근육이 눈에 띄게 달라진걸 보고 참기로 했다.

수업 첫 주가 엄청나게 추워서 부랴부랴 장만한 벙거지모자와 목도리, 마스크, 장갑으로 중무장을 하고 자전거를 탄 모습이 영낙없이 군밤장사 같다는 점이 좀 폼이 안 났지만 말이다.(사진을 참조하시라)


이번 1년은 공부도 공부지만 중국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되겠다고 작정하고 왔다. 마침 북경에 오자마자 가까운 분의 소개로 군 장성과 젊은 공산당간부들을 접하게 되었다. 두루두루 널리 좋은 사람들을 만나 생생한 감을 익히는 것이 지금 내겐 책을 읽는 것만큼 큰 공부가 아닐까 싶다.

초반에 만난 한 군 장성은 바로 호형호제할 만큼 가까워졌는데, 이 양반이 내가 중국말을 조금 알아듣자 엄청 잘하는 줄 알고 마구 평상시 속도로 말을 하는 통에 좀 고생을 했다.

어쨌거나 모르는 것도 진지한 표정으로 알아들은 척 하면서 응대를 한 덕인지,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하러 올라온 각 지방과 군대의 간부 친구들과 함께 만나자고 적극적으로 다리를 놓아주기까지 했으니 나로선 행운인 셈이다.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부터의 경험이지만, 외교도 결국 친분이고, 친분은 공식성보다는 오랜 기간 쌓여진 비공식성이 때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학교공부를 시작하면서 별도로 중국의 세계전략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북경대의 국제관계학 교수가 쓴 책으로 중국의 고대 전략사상부터 시작하여 현시점의 외교, 내정 전반의 전략을 다룬 책이다. 결국 세계적 대국을 지향하는 현대중국의 국가전략에 대해 종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제법 두껍기도 하지만 내게 영감을 주는 부분들이 많아서 조금씩 천천히 읽어갈 요량이다. 이 책을 붙잡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내 나름대로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국가전략에 대해 생각해온 것들을 올 해 안에 집중적으로 정리해봐야겠다는 의욕을 갖게 됐다.

주체적 세계화, 지식경제, 교육복지, 아시아공동체창설 등을 핵심으로 해서 내 나름대로 짧게는 지난 몇 해, 길게는 지난 20년간 생각해온 것들을 하나의 맥으로 꿰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상해, 뉴욕, 북경을 거쳐 내가 돌아갈 곳은 한국이다. 지난 몇 년간 바깥 구경을 하면서 견문을 넓혀왔지만,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과 생활에 뿌리를 박고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전략과 계획을 세우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역사를 보면 사회주의 혁명을 한 방식과 시장경제를 도입한 방식에 신기하게도 비슷한 차이가 나타난다. 중국은 두 번의 변혁 다 비교적 점진적이고 러시아는 두 번 다 급진적인 것 등등 말이다. 여기엔 각 나라의 복합적인 환경과 역사, 조건의 차이가 작용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절감하는 바이지만, 우리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우리나라의 환경, 역사, 민족성,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정말 깊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실정에 맞는 정치와 개혁이 나온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점점 우리 역사에 빠져들게 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국가전략을 세우고 코리안 드림을 그려내는 것. 그것이 내 퇴수의 목표이고 종착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북경시대는, 내 터전으로 돌아가 생활하고 움직이기 위한 내 40대의 마지막 준비기일지 모른다. 그리운 사람들과 다시 함께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할 현실을 감당할 힘을 기르기 위해, 오늘도 홀로 이 객지에서 기꺼이 외로움을 벗 삼아 퇴수의 각오를 새로 다진다.

 

前 국회의원  김 민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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