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동화비자금' YS 겨냥한 검찰 대반격수사

<함승희 전 의원 인터뷰-1> '동화'수사는 YS의 검찰죽이기에 대한 반격

김환태 | 기사입력 2006/09/17 [18:35]

<인터뷰-1>'동화비자금' YS 겨냥한 검찰 대반격수사

<함승희 전 의원 인터뷰-1> '동화'수사는 YS의 검찰죽이기에 대한 반격

김환태 | 입력 : 2006/09/17 [18:35]
▲     © 뉴민주닷컴

[함승희 전 의원 인터뷰 1탄]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는 검찰을 구악으로 단죄하려한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대반격 수사였다.
 
  부정과 불의에는 타협과 용서가 없던 법참단죄(法斬斷罪)의 대명사로 범법자들에게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던 한국검찰사의 산증인이자 원칙과 소신, 정의감으로 부패척결을 통한 나라 바로세우기에 온몸을 던져 의정활동에 헌신했던 정치인 민주당 함승희 전 의원을 지난 15일 '대륙'대표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나 특수부검사,국회의원,변호사로 걸어온 인생역정과 검찰독립,정치상황,국가현안에 대해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고견을 들었다.

  함승희 전 의원은 1951년 강원도 양양에서 항일운동 가문의 후예로 태어나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양정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그후 사법연수원 과정을 수료하고 서울지방 검찰청 공안부로 배치받아 검사로서 첫출발을 시작하였다.

  그후 특수부로 보직을 옮긴이래 수원지방 검찰청 특수부검사,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특수부검사,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대전지방 검찰청 서산지청장을 역임하고 법복을 벗었다. 13년간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함승희 전 의원은 새마을본부비리, 연예인 폭력, 주식조작, 교육계비리, 동화은행 비자금, 호화외제의류 가구밀수 사건등을 맡아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수사실력과 거악에 맞서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발휘, 부정과 불의를 초토화시키면서 '검은돈 추적의 귀재''함불독'으로 불리는등 특수수사통 검사로 명성을 떨쳤다.

  그가 해결한 사건중 권력형 부정부패를 단죄한 '동화은행 비자금'사건과 '30만원짜리 수입팬티'사건은 아직도 국민들 뇌리에 생생할만큼 부패척결을 통한 국가기강과 도덕적 투명성및 건강성 제고에 크게 기여하였다. 서산지청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함승희 전 의원은 종합 법무법인'대륙'을 설립, 대표변호사로 일하던중 2000년 제16대총선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정치에 입문하였다.

  국회의원으로서 국회법사위, 정무위간사, 원내정치 개혁특별 위원회 간사등 13개 특별위 간사와 민주당 제1정조위원장, 법률자문단장을 역임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헌신하였으며 노무현정권의 열린우리당 합류 제의를 거부하고 민주당을 지키다 탄핵후폭풍, 집권세력의 이미지 선거전략에 의해 2004년 4.15총선에서 낙선이라는 정치적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정치적 의리와 지조를 지킨 정도를 걷는 정치인이다.

   민주당 조순형 전 대표가 김경재 전 의원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가장 일 잘하는 정치인으로 꼽은 함승희 전 의원의 진솔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우국충정으로 불타는 격정토로를 들어본다.

 
▲   함승희 전 의원, 그는 특수부 검사출신으로  지난 16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17대 서울 노원에서 출마 낙선하고 현재 종합법무법인 '대륙'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26 재보선 당시 서울 성북을에 출마한 조순형 후보 지원 거리유세 장면 © 뉴민주닷컴

  
    "강골검사,함불독이란 평은 불의를 보면 못참는 성격과 직무수행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붙여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환태 : 법무법인 '대륙'의 규모가 대단합니다. 대표변호사를 맡고 계시죠. 무척 바쁘실것 같습니다.
 
함승희 전의원 : 그렇지 않아요. 정치에 입문하면서 부터 변호사일은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도 대표만 맡고있을 뿐이지 소속 변호사들이 꾸려나갑니다. 요즈음 하는일이라고는 글쓰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어요.
 
김환태 :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변호사군단 총사령관 대표님보다는 의원님으로 호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원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얼굴에 주름아나 없는 동안이십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일정도인데 특별히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으십니까?
 
함승희 전의원 :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검사로 재직하는동안 승용차없이 버스나 전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많이 걸었지요. 국회에 들어가서도 틈만나면 국회주변 윤중로나 한강둔치를 걸었습니다. 요즈음에도 남산순환도로 산책로를 30분내지 한시간씩 걷고 약속시간에 나갑니다.
 
김환태 : 의원님께서는 검찰에 몸담고 계실때 인자한 선비형 풍모와 달리"함검사님 방에 불려갔다하면 반쯤은 죽어나온다"는 말이 나돌정도로 전투적 외유내강형 강골검사로 위명을 떨치셨는데 특수부 검사생활이 적성에 맞으셨던 모양이지요?
 
함승희 전의원 : 제가 강원도 양양촌놈 아닙니까. 촌놈의 특징은 우직하고 요령을 못부립니다. 거기다 제성격이 잘못된것, 불의를 보면 못참습니다. 그렇다고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거부감을 주는일은 없습니다. 태생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때문이지요. 그러나 공인으로써 직무를 수행할때는 일에 대한 책임감과 불의를 보면 못참는 성격이 결합되어 평소와는 다른 사람으로 변합니다.
 
김환태 : 불법을 단죄하는 검사직이 불의를 못참는 성격과 일치된면이 있는데다 직무에 대한 강한 책임감 때문이라는 말씀이군요.
 
함승희 전의원 : 그렇습니다. 잘못된것을 못참는데다 잘못을 바로잡는게 검사로써 직무를 다하는 것인데 잘못한 것이 분명하고 나쁜짓을 한게 사실인데도 계속 거짓말을 한다는건 나를 등신 만들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잘못을 인정하고 사실을 고백하게 만들려면 인상을 쓰고 큰소리도 칠 수 밖에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죽을맛이겠지만 그게 세상을 바로잡고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보니 그렇게 소문이 났나봐요.
 
검사생활 동안 불의를 보면 인상쓰고 질타하는 버릇이 국회 의정활동할때도 그대로 나옵디다. 국회에서 제기되는 법안은 모두 법사위를 거치게 되는데 법사위 간사를 맡았을때 보면 정부 각부처에서 조직이기,산하공기업을 위해 의원들에게 로비를 벌여 말도 안되는 엉터리 법을 만들어 올때가 많아요. 제성격으로 그냥 넘어가지 못하지요. 인상쓰고 질타하는 모습이 TV에 나온것을 본 집사람이 혼자 나선다고 세상이 바로 잡히겠느냐며 인상 그만쓰라고 합디다.
 
김환태 : 검사라고해서 모두 의원님 같지는 않으시겠지요.
 
함승희 전의원 : 당연하지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훌륭한 검사들이 많지만 어떤사람은 자기손으로 구속영장 한번 끊지않고도 검찰총장,수뇌부로 출세한 사람도 있어요.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의정활동은 제대로 하지않고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덕담이나 하고 두루뭉실 원만하게 사람정치하는 사람들이 4선 5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국가와 국민을 위해 불행한 일이지요.
 
 
   "30만원짜리 수입외제팬티 직접 만져 보았으며 외압 물리치고 관련자들 전원 소환하여 호통쳤다"
 
 
김환태 : 투철한 직무수행 보다는 인간관계 잘하는 사람이 출세한다는 말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의원님의 정의감이 잘 들어난데다 본격적으로 존성대명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는 아무래도 1990년 호화외제 의류가구 밀수사범 수사가 아니었나 합니다. 당시 국민들 사이에서는 '30만원짜리 수입팬티'가 단연 화제였습니다. 여쭤보기가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만 팬티실물을 직접 확인해 보셨습니까?
 
▲     © 뉴민주닷컴

함승희 전의원 : 당연하지요. 그당시 30만원이면 경찰관 한달 봉급이었습니다. 수사관들이 팬티를 들고 '이게 내 한달 봉급이다'며 한탄을 했어요. 만져보니 잘 늘어나고 쥐어보니까 손안에 쏙 들어갑디다.
 
김환태 : 30만원짜리 외제 팬티를 사입을 정도면 면면히 대단했을텐데 조사가 쉽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함승희 전의원 :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대상자가 200여명 되었는데 그중에 당시 노태우 대통령 최측근 실세장관 부인, 모신문사 사장부인,모그룹 재벌며느리,검사 장모,기업체 사장부인등 정말 어마어마 했어요. 검찰 출두자체가 엄청난 일인데 부른다고 오려고 하겠어요. 사실 사입은 사람은 죄가 안되거든요. 따라서 피의자 신분이 아니고 참고인 신분이란 말입니다. 참고인들은 소환 조사를 거부해도 되거든요.
 
그러나 당시 고가의류,가구는 정상적으로 수입이 안되다보니 모두 불법밀수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밀수범을 수사하려면 구입한 사람들 조사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대상자들이 권력층,부유층,사회지도층 부인네들이다 보니 외압이 심했어요. 총장님을 비롯 검찰수뇌부 에서도 말리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참고인 조사로는 안될것 같아 정말 소환에 불응하면 밀수장물을 취득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수 밖에 없다고 버텼지요.
 
김환태 : 당시만해도 권력의 위세가 살아있을 때여서 외압에 맞선다는게 쉽지 않았을텐데요. 끝까지 소환조사를 관철시켰습니까?
 
함승희 전의원 : 물론입니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지 않으려면 출두하라고 했지요. 다만 한꺼번에 떼거리로 몰려오도록 했어요. 그러면 누가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출두하면 개인명예를 철저히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러니까 나오더라구요.
 
김환태 : 조사할때 구입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내셨습니까?
 
함승희 전의원 : 아니죠. 호화사치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며 호통을 쳤지요. 그러니까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비는 사람, 평생을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겠노라고 약속한 사람도 있었어요. 조사결과 블라우스 두세벌 구입한 사람들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조사를 끝냈지만 2~3천만원어치씩 구입한 기업체 사장부인 4~5명은 국세청에 통보했어요. 세금 엄청나게 추징당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일이니까 밝히지만 당시 검사 장모를 소환조사 했는데 검찰을 나온후에 변호사로서 수임한 사건 담당검사가 공교롭게도 소환조사 받은 장모사위였어요.뭐 법대로 했겠지만 사건을 부탁한 제 의뢰인을 즉각 구속시켜 버립디다. 어이가 없었죠.
 
김환태 : 기분이 묘하셨겠습니다. 의원님께서 '함불독'이란 별명을 얻으신건 앞서 말씀하신 외압을 물리치고 수사를 밀어부친 추진력 때문입니까? 아니면 조직폭력배,호화외제 의류사건등 각종사건 연루자 조사시 압박수사 기법 때문이었습니까?
 
함승희 전의원 : 빽아니라 천하없는 사람도 잘못을 저지른 나쁜사람들은 용서할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조사하면서 저질스런 육두문자를 쓴건 아니고 '야,이놈아! "정도였지요. 그리고 지금 청와대 민정수석은 보시다시피 코드만 맞으면 판,검사 경력없는 사람도 하질않습니까.그러나 당시 민정수석은 검찰 고위직에 있는 분들이 민정수석으로 갔다가 다시 검찰로 복귀하는 순환식이었어요. 모두 일반검사들의 대선배 분들이었지요. 그분들의 지시,권유를 물리치고 수사를 강행하다보니 그런평을 듣게 된것같습니다.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는 검찰을 구악으로 단죄하려는 김영삼 정권에 대한 검찰의 대반격 수사였다"
 
 
김환태 : 육두문자를 쓰지 않으셨다는 말씀 믿겠습니다. 의원님께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특수부검사로 검찰사에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된것은 아무래도 거악에 맞서 싸운 대표적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인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가 아닌가 합니다. 제가 알기로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는 제보나 고소,고발이 아닌 의원님 독자적으로 단서를 포착하여 수사를 하게 된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가 볼때에는 권력형 사건을 의원님 차원에서 벌인것 같지는 않고 기획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진실이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함승희 전의원 : 야,이거..... 그래요, 한마디로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는 김영삼정권에 대한 검찰 생존차원의 대반격 수사였습니다.
 
김환태 : 기획수사였다는 말씀이군요.
 
함승희 전의원 : 기획수사라기 보다는 검찰생존 차원의 거악에 대한 독립적 검찰권 행사라고 하겠지요. 잘 아시고 계시겠지만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전임정권에 대한 손보기,즉 푸닥거리를 하는게 한국정치 특징입니다. 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였구요. 정권이 바뀌면 공직사회,언론,경제계등이 새로 들어선 정권이 어떻게 나오나 눈치를 살핍니다. 그냥 놔두면 통제가 안되어 국정운영이 힘들다고 판단하고 정권에 힘을 실어야 줄을서고 통제권 안으로 들어온다는 생각때문에 '성역없는 수사''역사바로 세우기 수사'등 온갖 미명과 구실을 붙여 전임정권에 대한 푸닥거리를 하는거예요.
 
김환태 : 노태우 정권이 전두환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내고 노무현 정권이 동교동계와 검찰,군,금융계등에서 호남인맥을 제거한것처럼 김영삼 정권도 집권초기 푸닥거리를 준비했다는 말씀이군요.
 
함승희 전의원 : 그렇습니다. 김영삼정권이 군내 하나회를 척결하였지만 가장 먼저 표적을 삼은건 검찰이었습니다. 김영삼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노무현정권처럼 부패방지위원회를 만들어 검찰을 TK정권을 보호한 구악이자 대표적 부패집단으로 몰아 검찰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을 준비하였습니다. 이거야말로 검찰의 도덕성과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닙니까.
 
검찰이 당하고 있을수만은 없었지요. 생각해보세요. 법조계도 사람이 사는 조직사회인 만큼 비리도 생기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검찰이 정치권보다 잘못되었거나 썩은 집단은 아니잖아요. 정치인들은 힘들여 돈한푼 직접 벌지도 않고 수입이라야 국회의원 세비뿐인데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는 계파를 거느리고 당을 운영합니다. 거기에 소요되는 돈이 합법적인 돈도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대부분 불법 정치자금이었거든요.
 
밑바닥에서 부터 정치를 시작하여 정권을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겠습니까. 그런자들이 정권의 힘을 구축하기위해 검찰을 구악으로 몰아 희생양으로 만들겠다니 우선 저부터 용납할 수 없었지요.
 
김환태 : 당시 검찰총장등 수뇌부와 교감이 있었습니까?
 
함승희 전의원 : 당시 검찰총장이 TK출신 박종철 총장이었습니다. 당시 검찰은 TK출신이 주류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TK민자당 후보로 집권한 상태에서 검찰을 치려는데 대해 반감도 없지 않았겠지만 무엇보다 거악은 사실 김영삼 대통령인데 거악인 김영삼대통령으로 부터 검찰 전체가 구악,부패집단으로 단죄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지요.
 
김환태 : 동화은행 비자금과 김영삼 대통령간에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함승희 전의원 : 관련이 있었던 것보다 김영삼 대통령이 거악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정권비리의 핵심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대상이 이원조 전 의원이었어요. 당시 이원조 의원은 노태우 정권 대선자금 조달에 이어 김영삼 정권 대선자금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것으로 소문났었기 때문에 이원조 의원을 지목한거지요.
 
이원조 전 의원이 누구입니까. 금융계의 황제로 소문난 사람 아닙니까. 그렇다면 은행권과 관련이 있겠다 싶어 은행관련 정보철을 뒤적거려보니까 92년 2월 '안영모 동화은행장 연임에 말썽, 직원들시켜 시중 백화점,호텔등에서 영수증을 대량으로 모아'라는 내용이 있어 바로 이것이다 생각했습니다. 영수증을 모아 판공비를 쓴것처럼 비자금을 조성했고 비자금을 행장연임 로비용으로 썼다는 추론이 가능했지요. 로비를 했다면 금융권 황제인 이원조의원이 관련되었을 것으로 본 것입니다.
 
93년 4월21일 안영모 동화은행장을 전격 소환하여 조사해보니 이원조의원 뿐만아니고 이용만 전재무장관,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외 차관급등 거물들 상당수가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어요.
 
김환태 :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김영삼 대통령이 임명한 김태정 부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태정 중수부장도 김영삼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기위한 수사라는걸 알고 있었습니까?
 
함승희 전의원 : 당시 김태정 중수부장은 온지 얼마 안된상태여서 누구든 다 잡아들이라고 의욕을 보이긴 하였지만 김영삼 정권 반격용 수사라는건 몰랐을 것입니다. 아무튼 거물들 수뢰사실이 드러나니까 발칵 뒤집혔어요. 특히 이원조의원을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강력 건의하자 청와대 김영수 민정수석이 '선물증 후소환'논리를 내세우며 '물증이 없으면 진술만 가지고 현역의원을 조사하지 못한다'고 제동을 걸고 민주계 실세등 여기저기서 회유와 협박이 들어와요.
 
김환태 : 그래서 결국 이원조의원 수사를 못하고 미완의 수사로 끝난 것입니까 ?
 
▲   김환태 뉴민주닷컴 대표 겸 편집인과 정계에 입문한 과정과 검사시절 주요사건 수사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눈 함 전 의원  © 뉴민주닷컴

함승희 전의원 : 아닙니다. 물증을 물고 늘어지기에 '좋다 그러면 반드시 증거를 잡겠다'고 결심하고 단독으로 과거 데리고 있했던 수사관들을 불러모아 수표추적에 나섰습니다.
당시는 수표추적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장관을 잡아넣는 수사가 거의 불가능하던 시절 집권당 재경위원장이던 이원조의원의 수뢰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수표추적에 나섰으니 지금 생각해도 보통 용기가 아니었던것 같아요.
 
수표추적을 하다보니 1억원짜리 수표가 상업은행 효자동 지접 '청송회'명의단체 계좌로 입금이 된거예요. 놀라운것은 그계좌에 500억원의 잔금이 있었고 수시로 수십억씩 입출금이 된게 드러난데다 계좌가 노태우대통령이 관리하는 계좌였다는 사실이었어요.
 
노태우,전두환 전직 대통령계좌가 드러나자 난리가 났지요. 당시 수표추적을 나갔던 수사관이 사무실에 돌아오기 전이어서 나도 모른 상태였는데 벌써 상부에서 전화가 와서 왜 그계좌를 추적했느냐고 추궁하는거예요. 이원조의원이 공공연하게 나를 건드리면 모든걸 까발리겠다고 협박한 것도 김영삼 정권에게 압박이 되었지만 노태우,전두환 비자금까지 드러나자 '어마 뜨거라'라고 정권차원에서 서둘러 덮어버리기로 작정하였는지 노골적으로 수사에 제동을 걸었어요.
 
김환태 : 그래서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가 미완의 수사로 결론난 것이군요.
 
함승희 전의원 : 결과적으로 그렇지요. 당시 저는 대검수사 연구관으로 파견나온 신분으로 수사에 한계가 있었고 수사관 10여명을 외부에서 데려다 수사를 진행했는데 수사관들을 임의로 차출하였다면서 모두 돌려보내 버려서 수사를 더 이상 진전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다 그때 마침 검찰 정기인사철이었는데 서산 지청장으로 전격 승진 발령을 내더라구요. 후임 수사검사까지 임명되지 않다보니 수사자료도 공중으로 붕 떠버렸고 그렇게 흐지부지 수사가 끝나버렸습니다.
 
김환태 : 국민들은 당시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수사를 지휘한 의원님을 두고 권력의 시녀로만 보았던 검찰에서 희망을 발견하였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의원님께서 검찰에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검찰의 대들보가 부러졌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검찰을 떠나신게 외압이었습니까. 자의였습니까?
 
함승희 전의원 : 외압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검찰을 떠난건 순수한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지청장은 간부직입니다. 간부가 되면 일선수사를 할 수가 없어요. 더 이상 일선수사를 할 수 없게 되다 보니까 이제 내가 검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갈길을 걸어 봤으니까 이제 직업을 바꿀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결심한 것입니다.
 
<제1부를 마칩니다. 함승희 전 의원 인터뷰 2부에서는 함승희 전 의원이 김대중 당시 대통령으로 부터 민주당 입당을 권유 받고 총선에 출마하게 된 경위와 검찰 독립에 대한 소신등을 소개합니다.>
 
김환태 / 뉴민주닷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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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환태 2006/09/17 [23:02] 수정 | 삭제
  • 황룡강님께서 궁금해 하신 부분 2부에 있습니다
  • 황룡강 2006/09/17 [20:57] 수정 | 삭제
  • 함 전의원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물론 검찰 내부에 함의원님 처럼 양심적인 검사가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대부분이 썪어 문드러진 자들이 태반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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