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그 이름이 내게 준 기쁨과 슬픔...희망과 절망...그리고 편안함. 선생님. 지금 저는 매우 편안합니다. 가슴을 들끓케 했던 열정도 욱 하며 치밀어 오르던 분노도 모두 접어버리니 지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짝사랑을 접으니 이렇게 편안한 것을... 선생님...1971년 4월 어느 날...저는 약관 스무살로 님을 알았습니다. 그곳이 장충단 공원이던가요? 동대문 운동장 앞에서부터 장충단 공원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사람들의 바다였습니다. 저는 그 사이를 뜷고 그래도 공원 먼 발치까지 갔었지요. 거기서 님을 보았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씨가 이기면 이 나라는 민주주의가 없어질 것입니다. 총통제가 되어 박정희씨가 종신집권을 할 것입니다" 장충단 공원 뿐만 아니라 그 옆 남산까지 쓰러뜨릴 것 같던 선생님의 연설은 모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선생님을 알게 된 최초의 사건입니다. 이후의 과정을 다 쓰려면 너무 깁니다. 그냥 그렇게 저는 1971년 이후 2007년 4월 무안 신안 보궐선거까지도 선생님을 우리 민족이 낳은 가장 위대한 이론가요 정치가로 존경하며 흠모했습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가 끝난 뒤 노무현이 대북송금특검을 단행하자 즉시 반노가 되어 선생님의 민족화해 업적이 폄훼되는 것을 방어했고, 민주당을 분당시키고 노무현 정당이 대세를 장악했을 때도 그 정당은 노무현의 정치적 운명과 같이할 것이라는 논리로 민주당 살리기에 올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과거사를 들먹이며 선생님의 도덕성에 의문을 보냈어도 저는 선생님의 민족을 향한 애정을 의심치 않았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의심치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노무현과 민주당에 등거리 외교를 할 때도 전직 대통령의 스텐스로서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집권 후 이런저런 인연으로 선생님의 이름을 팔아 자리도 보전하고 심지어 선생님의 휘호가 새겨진 도자기까지 이용, 돈을 만들었어도 저는 그 또한 선생님은 알지 못하는 것이며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이 모두가 선생님의 善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민족애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 평화에 대한 열정을 흠모했기 때문입니다. 제가호남출신이어서 그랬을까요? 그 점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그 보다는 선생님 이외 누구도 어떤 정치인도 '인간중심'이라는 이념에 따른 정치를 한다고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단 한가지 선생님께 못마땅했던 것은 북한 인권문제였습니다. 세계의 모든 폭압 정권에 무고한 사람을 가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선생님이 김정일 정권에 무고한 사람을 가두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은 점이 불만이었지요. 그렇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정치범을 가두고 폭압적 대우를 하는 것은 인권이라는 인류보편성에 반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권을 가장 핵심의 화두로 산으셨던 선생님은 당연히 김정일에게 폭압적 정치범 탄압을 항의 했어야 합니다. 이 땅 대한민국에서...이 지구촌 한민족에서 단 한 분 선생님만이 김정일에게 이를 꾸짖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미얀마의 군부가 아웅산 수지여사를 탄압하는 것은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김정일에겐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북한 김정일의 특수성...뜻에 맞지 않으면 대화까지 보이콧하기 때문에 남북의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서...평화정착이란 대화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그 이유였지요?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선생님은 당당하게 김정일에게 말했어야 합니다. "정치적 반대파를 잡아 가두고 폭압적으로 다스리는 한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가 힘들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무너진 경제를 재건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 내려면 정치벅 반대파를 폭압적으로 다스려선 안 된다. 지금 당신은 잘못하고 있다" 선생님은 김정일에게 대놓고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하지 않으셔야 할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선생님...선생님이 지금 외치는 대통합은 통합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지금 잘못하고 계십니다. 언제까지 반 한나라당이라는 굴레를 쓰고 계셔야 합니까? 왜 그것이 필요합니까? 설령 반 한나라당 집합이 성공한다고 그 집합이 나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무슨 이념으로, 무슨 정책으로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담보한다는 것입니까?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로 선거에 의한 과반정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민족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국가보안법 철폐헸습니까? 사학법 온전하게 부패사학을 견제할 수 있게 제정했습니까? 노동관계법 근로자와 사용자, 비정규직과 정규직, 정부와 노동계, 정부와 재계가 합의하여 약자보호의 원칙을 이룰 수 있도록 정비되었습니까? 한미관계, 남북관계, 한일관계, 등 국제외교무대에서 당당한 한국을 만들었습니까? 소수자 복지문제, 차별문제, 지역간 계층간 갈등문제, 해결의 기초라도 시작했습니까? 지역차별에 의한 지역갈등문제 완화의 기미라도 있습니까? 과연 무엇이 되엇으며 무엇이 되지않았습니까?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뺄샘정치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지지그룹을 가르고 자기들만의 정당을 했던 사람들...그들이 열린우리당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라를 바로세우지도 지역문제를 해결하지도 계층간의 갈등을 해결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 스스로 무너져 내렸고 그들은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한나라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지명받을 수 없는 한계 때문에 15년 정치인생 동안 정치적 거물로 성장시킨 한나라당을 버리고 나온 사람이 대안입니까? 민주당과 호남, 그리고 전국의 중산층과 서민들 지지를 받아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그나마 지역통합, 계층통합이라는 이념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대통령이 되자 측근강경파와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자신들의 본거지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했습니다. 정치입문 부터 민자당이었고 지금 한나라당이 된 정당에서 청와대의 고위작부터 시작하여 국회의원, 장관까지 역임하고 민선도지사가 되었던 사람이 어느 날 대통령 직이 욕심나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둥지를 버렸습니다. 그러 그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을 버리지 못하겠습니까? 현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미터입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지금 그들 모두에게 합하라고 하십니다. 합해서 무얼 하시려구요. 선생님의 뜻대로 합쳐서 다시 특정인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구요? 그 다음은 요? 또 버림을 받으시고 또 짖밟힘을 당하시고 또 지지그룹까지 비참하게 하실려구요? 민주당 한 번으로 족합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 정말 노욕으로 보이십니다. 아니 세간의 의혹대로 혹여 정말 감옥에라도 가야할 비리가 있는 것인가 의심하게 됩니다. 이제 그만하세요. 선생님의 말씀대로 우리나라의 정통 민주정당 뿌릴 이어온 당이 민주당입니다. 민주당이 호남의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나, 버리고 밟아야 할 당은 아닙니다. 민주당은 이 땅에 단 하나 남은 정통 민주정당입니다. 선생님...저는 이제 편안합니다. 선생님에 대한 기대도 미련도 버리니 이렇게편압합니다. 짝사랑이 힘든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지난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당신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공 하나로...아주 작은 끄나풀 하나로...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이 들끓던 주위에서 한 발 떨어져 있으면서 선생님의 실패를 보고있자니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선생님의 성공이 기분좋았던 저는 그들의 발호와 선생님의 실패가 끈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이 선생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지금은 아닙니다. 그래서 편안합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시도가 성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저는 그러나 이제 그 같은 선생님의 시도를 찬성하지 않으며 선생님의 지금 그 시도는 필히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래도 편안합니다. 짝사랑이 끝나니 참으로 편안합니다. <저작권자 ⓒ 뉴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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