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살려 호남정치 부활시키고 싶다"

김경재 전의원 '월간지 순천인' 인터뷰 내용전문

뉴민주닷컴 | 기사입력 2008/01/09 [16:31]

"민주당 살려 호남정치 부활시키고 싶다"

김경재 전의원 '월간지 순천인' 인터뷰 내용전문

뉴민주닷컴 | 입력 : 2008/01/09 [16:31]
<18대 총선이 90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민주당 김경재 전 의원이 순천에 출사표를 던지고 고향 순천에 선거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선거준비에 들어가면서 순천지역 월간지 순천인과 인터뷰를 가졌다. 본지는 '월간지 순천인'의 김 전 의원 인터뷰 내용을 입수해 그 전문을 옮긴다./ 뉴민주 닷컴 편집실>

▲   김경재 전의원   ©뉴민주닷컴
 

“순천을 21세기 복지도시로 만들고 싶다”
풍운의 사나이 김경재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난 17대 총선 당시, 탄핵 후폭풍에 휩쓸려 위기에 빠진 민주당을 살리기 위해서 민주당 지도부는 비상한 전략을 채택했다. 호남 3,4선 중진의원들의 지역구를 유능하나 정치기반이 약한 젊은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중진의원들은 모두 수도권에서 출마하자는 당 지도부의 물갈이 공천방침이 바로 그것이었다.

호남중진 수도권 진출전략을 선도하며 솔선수범을 보이기 위해 조순형 대표가 먼저 서울지역구를 버리고 생면부지의 대구로 내려갔다. 호남중진 중에서는 최초로 당내서열 3위인 김경재 최고위원이 순천 지역구를 후배에게 넘기고 ‘순천 발 서울행 열차’를 탔던 2003년 그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순천역 앞의 풍경이 아직도 시민들의 기억에 선명하다. 그 김경재가 4년 만에 순천으로 돌아왔다. 한 풍운아의 귀향이다.

지난 4년간 김경재는 노무현의 탄핵광풍에 휩쓸려 서울선거구에서 낙방거사가 되고 15년의 미국망명에 못잖은 갖가지 시련과 박해를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받았다. 노무현 정권은 명예훼손 혐의로 헌정사상 최초로 현역의원을 11일 동안 영등포 구치소에 구속시키는가 하면 4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재판을 벌여 그를 겁박하였다. 자신을 당선시켜준 대선 홍보전에서 사용처가 너무도 명백한 대선홍보자금 3천만 원에 대한 영수증이 미비 됐다고 해서 그를 재판에 회부하기도 했다. 김경재는 그 모든 시련을 깨끗이 이겨냈다.

4년이 지난 2007년 겨울 어느 오후, 그는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개혁세력의 처참한 몰락을 지켜보면서 이제 덩달아 존립이 위태로워진 민주당을 고향에서 살리겠다고 서울발 순천행 열차를 타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민주당은 지난 4년 동안 두 번에 걸쳐 분열됐는데 첫 번째 분열은 노무현 대통령에 의한 것이고, 두 번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서 대선직전에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이다. 30년 넘게 김대중 맨으로 미국망명생활을 통해서 뜨거운 인연을 맺어온 김경재 입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운함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오는 4월 9일 실시되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순천시민들의 선택을 통해 정계복귀를 열망하며 최근 최고위원직을 던지고 4년 만에 순천으로 돌아와 선거사무실을 연 김경재 전 의원을 만나 최근의 심정을 들었다.[편집자 주]


질문: 17대 총선 이후 여러가지 활동을 한 것으로 아는데 지난 4년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김경재: 순천시민들이 과분하게 저에게 두 번에 걸쳐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8년간의 의정생활을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특히 지역구 의원으로 지역구민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갔는지도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록 원외에 머물고 있었지만 민주당 재건을 위해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도 나갔고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재건전략 차원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려다가 당의 전략공천에서 밀려나 꿈을 접기도 했습니다. 17대 총선에서 낙방거사가 된 이후 의정생활을 반성하는 기회도 있었지만 역사공부를 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2004년 겨울에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있었던 ‘북관대첩비’를 돌려받는 일을 처음으로 시작하여 동경에 가서 야스쿠니를 책임지고 있는 궁사 측과 담판에 성공, 북관대첩비의 100년만의 귀환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고, 2005년에는 고건 전 총리와 함께 중국 하얼빈시를 방문해 청년안중근 의사를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는 기회를 갖기도 하고, 백두산에도 올라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해 보는 역사여행 기회도 가졌습니다.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앞두고 동상건립을 추진하는 ‘안중근 의사 동상건립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오는 3월에 서울에 동상을 건립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의미 있는 것은 2005년 러시아 브리아티아 국립대학에서 한글보급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명예교수로까지 임명되어 틈틈이 바이칼 호수 유역에 있는 한민족의 원적지인 브리아티아를 방문, 한글 소개도 하고 그곳 동양학부에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브리아티아 대학교와 순천대학교를 연결, 자매결연을 맺게 해서 매년 유학생들을 교류하고 있는 것도 저의 작은 보람입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고건 전 총리를 민주당 후보로 영입하려던 계획이 노무현의 방해공작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그래서 조순형 의원을 민주당 후보로 내세우려 했는데 이것 역시 악의에 찬 정치공작으로 중도에 그만 둬야 했습니다. 그 내막은 다음에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인제 후보를 선출해 막판 지지도 하락으로 사퇴압력이 거셌지만 본인의 뜻이 워낙 완강하여 민주당 후보를 끝까지 지지하는 당원의 자세를 지켰습니다.   
지난 4년이 의정활동 8년에 못지않게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순천을 떠난 것은 아니었구요. 선조의 얼이 서린 낙안면 내운리에 오래전부터 마련된 땅이 있어서 그곳에 11평짜리 콘테이너 집을 마련, 주민등록도 옮겨 놓고, 서울과 순천을 오며가며, 남초등학교 동창인 이장과 틈틈이 어울리며 고향사랑에 열을 올리기도 하며 지내오고 있습니다. 

특히 가정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난 5월 13일에 저희 아들 진환(미국명 필립)의 혼사를 치렀다는 것입니다. 며느리는 아들과 같이 미국 마이아미에서 동료 변호사로 일하는 페니 오코넬 양입니다. 한국에 들어와 서울 운현궁에서 전통식으로 혼례를 치렀는데 주위 여러분들의 주말 스케쥴이나 축의금등을 부담스럽게 하지 않도록 청첩장을 보내지 않고 순전히 직계가족으로만 치루고 나중에 인사장만 보냈습니다.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 아들놈의 문안전화가 왔는데 제 며느리가 임신 18주에 들어섰고 아이는 아들로 밝혀졌고 어미도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저희 부부도 오는 4월말 경에는 첫 손자 아들을 얻는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질문: 민주당을 살리려 서울 간 것은 어찌 되었나?

김경재: 2003년  민주당 지도부의 호남물갈이 전략은 호남 중진들의 비협조로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전남 동부 2명, 서부 2명, 광주 1명, 전북 2명 등 총 7명의 중진의원들이 서울의 서남벨트 즉 동작, 관악, 영등포, 강서, 양천 등 10개 지역구에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상호 협력하며 선거를 치른다면 노무현의 오만과 독주를 막을 수 있다고 믿었던 기대는 당초의 언약과는 달리 당해 중진들이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무위에 그친 것입니다.  

간신히 전남서부의 한화갑 의원이 자못 격조 있게 ‘잘 있거라 승달산아’ 하고 무안 신안을 떠나는 감회의 시조까지 읊조리며 서울로 상경, 조순형 대표와 저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나 일주일 만에 그 유명한 ‘정치적 U턴’을 해버리는 바람에 민주당의 사기는 오히려 더  떨어지고 공천장반납이 속출하여 이미 패배를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서울 경기 지역에서 민주당후보가 전멸당하는 참패였지요. 저는 그 처절한 참패의 현장에서 저에게는 생소한 서울 강북 을 구 낙선을 차라리 ‘한 판의 신선한 패배’로 떳떳하게 받아드렸습니다.  
 
지난 2007년 12월 19일 대선에서 민주개혁세력을 대표한다는 정동영 후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절반에도 못 미칠 만큼 저조한 득표로 참패했는데 집권당 대선 후보가 야당 후보에게 더블스코어로 참패한 기록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5년 전 2002년 대선에서 저는 자타가 인정하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특등공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노무현을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았습니다. 이번에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당선시킨 것은 “국민들이 이명박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을 심판하고 철저히 응징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버리고 열린당을 창당한 것이 원죄이고, 연이은 국정실패와 민생파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나치게 현실정치에 개입해 중도개혁세력의 통합을 저해하는 오판을 거듭하여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존립의 근거조차 흔들리게 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질문: 다시 순천으로 돌아온 배경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김경재: 아시다시피 정국이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민주당도 장래가 불투명하고, 전국정당 만들겠다면서 민주당을 깨고 나가 지난 4년 동안 실패한 정권으로 국민들로부터 처절하게 응징 당한 통합신당의 장래도 예측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다시 정치를 시작한다는 초심으로 돌아와 고향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특히 노무현이 만든 열린우리당(통합신당)으로부터 순천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탄핵광풍 바람에 엉겹결에 국회의원이 된 이른바 ‘탄돌이’들의 국정농단은 끝장내야 합니다. 저의 후임으로 민주당후보가 된 노관규 변호사가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 승리하지 못한 것은 탄핵광풍이 이곳 순천까지 밀려온 탓입니다.  다행히 그가 2006년 순천시장으로 방향을 틀어 당선되어 보람을 얻었는데 이번에 가까운 측근들이 총선에 나와 ‘리턴 매치’를 하라고 성화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노시장은 임기 2년도 안채우고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는 것이 무리라 판단하여 사려 깊게 출마를 단념한 터라 제가 무리 없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경위야 어떻든 말썽 없이 고향에 돌아오게 배려해 준 노시장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질문: 민주당의 장래가 매우 불투명하다고 스스로 진단하고 계시는데,,,

김경재: 지난 4년 동안 민주당 재건을 위해 나름대로 중앙당에서 노력을 했습니다만 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지도부를 구성하는 최고위원의 한 사람으로 무거운 책임을 느껴 대선 직후 그 직을 사퇴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고도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민주당이 하루아침에 야당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지만 대선 직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의 덫에 걸려 기사회생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거나 적어도 중립을 지켜주셔야 했는데 민주당 보고 무조건 민주당을 배신한 사람들과 합치라는 훈수를 했고, 선거 직전에는 정작 합치려고 하자  이번에는 합당 즉 합치지는 말고 후보단일화만 하라고 앞뒤가 맞지 않는 훈수를 하는 바람에 또 한 번 민주당이 정체절명의 위기 속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이 심기일전하여 스스로 뼈를 깍은 반성과 쇄신을 하고 공천에 있어서 과감하게 참신한 물갈이를 곁들이는 공천혁명을 이루어 낸다면 국민 특히 호남인들의 사랑을 다시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사이 쇄신위원회가 활동 중인데 박상천 대표가 당의 활성화를 위해서 얼마만큼 책임을 느끼고 살신성인하느냐가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대안도 사실 마땅치 않는데 박대표가 일인지배의 당 운영을 풀고 권한을 분점 시키는 집단지도체제 형식의 운영방식을 과감히 도입한다면 당의 화합은 물론 호남 이외의 지역에 당세확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리라 기대하며 주목하고 있습니다.  
 
질문: 이번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의 득표률이 낮은 것과 관련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책임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경재 : 모든 원인을 김 전 대통령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무리지만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김 전 대통령의 훈수 때문에 전남도지사, 광주시장, 전남지역 민주당 현역의원 대부분이 대선직전에 열린당(통합신당)으로 가게된 것입니다. 김홍일, 김홍업 두 아들 그리고 연청, 옛날 경호원들까지 모조리 빼갔습니다. 이제 민주당 안에 김대중의 흔적은 거의 없습니다. 민주당 말살하려는 고사작전이라고 보아야지요.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30년 이상을 김대중 선생과의 인연을 숙명처럼 여기며 망명의 고락을 같이 했고 그 분을 통해 이 나라 역사형성에 참여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오던 저는 한없는 회한과 슬픔을 느낍니다.  

선거참패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민주당을 배신한 세력들이 막판에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 위해 후보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단일화 덫에 말려든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호남의 표심은 내용적으로 후보단일화를 이룬 것이고 법적으로는 민주당 이인제 후보가 끝까지 완주한 것입니다.
 
질문: 18대 총선에서 호남민심이 민주당이냐 아니면 통합신당이냐를 놓고 고민할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대선에서 호남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사실상 몰표가 나온 것입니다. 사표방지심리가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총선에서도 대선 때와 같이 대통합신당에 몰표가 나올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지역후보 중에서 대표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특정 정당에 몰표현상이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총선이 아직 3개월 정도 남았기 때문에 그 안에 정계개편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순천시민들의 마음을 얻고 믿는 것이 저에게는 지금 무엇 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민주당을 꼭 재건해서 호남정치를 부활시키고 싶습니다. 선거라는 것이 워낙 변수가 많아···· 이 단계에서 민주당 간판을 내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민주당이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민주당을 배신한 국정실패세력에게 쏟아지는 국민적 비판의 언저리에서 민주당이 그 유탄을 맞고 있다고 생각하니 때로는 분통이 터지려고 합니다. 

민주당을 깨고 나가 열린당을 만들면서 정권을 재창출한 민주당을 야당 아닌 야당으로 만들어 버리고서도 때로는 필요에 따라 민주당을 범여권이라 부르면서 대선을 앞두고는 ‘한나라당 집권을 막자’면서 후보단일화를 요구하고····배신자들이 민주당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호남인들이 결코 노무현 정권과 열린당이 정치를 잘 해서 대선 때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민주당이 스스로 재건하려는 내부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에 따라 민주당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혁명적 변화 없이는 민주당의 장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조건 민주당을 살려달라고 호소할 것이 아니라 민주당 스스로 쇄신하고 변해야 할 것입니다.  
 
질문: 18대 총선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김경재: 이번 총선도 개인은 물론 흔히 민주당이나 통합신당 모두 매우 어렵다는 판단을 합니다. 호남지역을 제외한 수도권 등 타 지역에서 민주당과 통합신당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민주당과 통합신당이 호남에서만 치열한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국정당 만들겠다고 민주당 박차고 나간 사람들과 호남지역 안방을 놓고 싸우는 비극적인 모양세가 연출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심하기도 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당연히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야지요.

특히 순천은 민주당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호남에서 다른 지역에는 민주당 사람들이 대선과정에서 열린당으로 많이 움직였지만 유일하게 순천지역의 민주당만은 단 한 명의 탈당도 없이 온전하게 지켜지고 있는 전국유일의 민주당 보루지역이라는 것입니다. 순천사람들의 자존심, 의리가 민주당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위기의 민주당을 구해낼 정신이 순천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당 재건의 깃발을 순천에서 세우도록 할 것입니다.

노관규 순천시장을 비롯해 민주당 출신 박동수 시의장 등 15명의 시의원 전원 그리고 박흥수, 이홍재 도의원들이 그대로 민주당 당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큽니다. 민주당을 지키는 최후의 전선이 순천이 될 것입니다.

질문: 대선이 끝났으니 과거 한 식구였던 민주당과 통합신당이 합쳐야 된다는 논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경재: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습니다. 일단 민주당을 배신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심판은 끝났기 때문에 민주당의 일차적 전략목표는 달성됐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제 통합신당과 민주당이 손을 잡고 호남뿐만이 아닌 수도권에서 선전할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는 생각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건전한 견제세력으로서의 제1야당 창출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심판이 끝난 노무현의 분열정치 배신정치에 우리가 더 이상 우롱당하고 희생당하는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우리는 원래 한 뿌리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통합신당에 남아있는 친노계열 인사들과 국정실패의 직접적인 책임자들이 배제되고 정통민주 중도개혁세력들이 다시 뭉칠 수 있으면 하는 기대입니다. 그리고 통합신당 주축들이 민주당 분당과 국정실패에 대해 민주당과 국민 앞에 통렬하게 사죄해야 합니다. 최근 통합신당 내부에서 의미 있는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질문: 16대 국회에서 여수엑스포유지 국회특위위원장을 했었는데 이번 2012년 여수엑스포 유치 성공에 대해 특별한 감회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김경재: 제가 현역 때 못 이룬 여수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것에 대해 감회가 남다릅니다. 2010년 엑스포 유치는 등록(정기) 박람회인데다 1700만의 중국 상해와 32만의 여수와의 경쟁이어서 우리의 힘이 부족했습니다. 이번에는 정식박람회 사이에 여는 인정(약식) 박람회이고 상대적으로 만만한 모로코를 상대로 한 경쟁이어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등록이든 인정이든 상관할 것 없지요. 기간만 6개월에서 3개월로 짧아진다는 거니까 우리로서는 그 준비하면서 도로니 항만이니 숙박시설이니 하는 사회간접자본의 확충과 고용창출에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요. 저도 국회특위위원장 지낸 경험을 살려 엑스포성공을 위해 열심히 돕겠고요, 특히 순천 신대지역을 중심으로 한 21세기의 새로운 연안해안지대의건설에 15년여의 해외경험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정몽구 회장님이 그때부터 수고하셨는데 언제 만나면 고마움을 표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정몽구 회장님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저의 후임으로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이 국회특위위원장을 맡았는데 언제 만나면 감사의 뜻을 전하려 합니다.
 
질문: 순천 시민들에게 한 말씀 인사드리자면?

김경재: 그동안 안녕들 하셨습니까? 여러분의 덕분으로 8년간 중앙에서 의정활동을 할 때는 그런대로 순천사람들 망신을 주지는 않을 만큼 국회연설이나, 심야토론이나, 청문회나, 국정감사에서나 한다고는 했습니다만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살갑게 붙임성이 많지 않아서 좀 서운하게 생각하던 분이 있는 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치겠습니다. 

저도 이제 인생 60고개를 올라서니 다소의 경륜도 붙고 국정과 시정을 보고 파악하는 눈이 좀 더 나아진 것 같습니다. 60이라 하나 15년을 해외망명으로 보냈으니 정신적으로는 50을 갓 넘는 장년이라 보아 주십시오. 저의 정치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고향에서 선후배 이웃들과 어울리며 신뢰받는 정치인, 깨끗한 정치인, 멋있는 정치인으로 마감하고 싶습니다. 시민 여러분,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2007년 12월 29일 / 월간지 순천인(順天人)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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