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통합의 노래 훈수와 발악

<네티즌 칼럼> 역사 후퇴 막기위한 절박한 위기의식의 발로

법성포 | 기사입력 2007/05/29 [15:51]

김대중 통합의 노래 훈수와 발악

<네티즌 칼럼> 역사 후퇴 막기위한 절박한 위기의식의 발로

법성포 | 입력 : 2007/05/29 [15:51]

12월 대선을 앞두고 분열된 민주개혁세력을 놓고 통합론으로 들끓고 있다. 전직대통령 김대중과 정치인들의 만남 속에서 강조되며 보도되는 것이 대통합이라는 명제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즉각 훈수 정치를 비난하며 자제를 촉구했고 급기야 전직 대통령 김영삼이 가세해 발악이라는 “극단적 욕설”까지 퍼부었다. 김대중이 이 같은 시비에도 대통합을 노래해야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은” 이라는 단서가 붙어야할 정치적 역사의 미완 때문이다.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고 후기정권의 재창출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유턴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위기에 처한 현실정치의 대선구도가 역사의 후퇴를 전제한 대결구도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대중이 이처럼 위기의식을 느끼며 대통합을 강조하는 것은 역사의 후퇴를 걱정해야만할 절박한 위기를 느꼈음이 분명하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후보군이 70%의 여론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현실과 분열된 전통적 민주개혁세력의 현실로는 대선승리를 넘보기에는 너무나 훤한 결과를 담보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김대중의 대통합의 외침에는 “절박한 위기”가 전제된 것이라면 그 절박한 외침 뒤에 놓여 있는 장애물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간단치 않은 복병들이 깔려있는 현실이다. 참여정부의 출범 후 정치적 자산과 지분 승계를 핑계 대며 집권세력의 분열을 꾀한 한 실패 뒤에는 분노와 증오의 장벽이 쌓여왔다. 그 장벽을 지탱한 앙금은 실패를 몰고 온 오늘날의 원인이자 대통합이라는 김대중의 절박한 위기의 외침을 재촉했다. 그 외침 뒤에 또 다른 하나는 연합 론에 의한 마지막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차선의 훈수다.

 

그것은 대통합이 실패할 수 도 있다는 전제가 가능한 차선의 선택을 훈수함일 게다. 그 차선이 제정당마다의 이해가 상충될 소지를 안고 있는 현실 때문에 연합에 의한 후보 단일화의 훈수임인 것이다. 그 훈수 또한 분열에 의한 앙금의 크기와 정치적 목적이 다른 길에 있음을 감지한 정치 9단의 판단에 의한 감각 때문은 아닌지 생각된다. 김대중이 보는 현실정치의 위기는 그처럼 간단치 않은 난제들을 안고 있다. 그러나 간단치 않은 난제를 풀어갈 중심이 없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훈수에 가두려고 하는 발언이 대통합과 차선인 연합후의 후보단일화 성사인 것이다.

 

대통합에는 이미 융합할 수 없는 정치적 장벽이 놓여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그것은 차선을 최선으로 선택하더라도 역사를 거스르는 우만은 거두지 말자는 호소일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의 대통합 론에는 대의라는 미완된 역사가 깔려 있고, 제 정당들의 이해와 계산에는 대선의 절박함은 어쩌면 제2의 선택일지도 모르는 함정에 매몰되어 있다면 기우일까? 아마 그것이 정답일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김대중이 정치적 훈수를 두면서도 정치적 목적과 길이 다른  통합의 난관을 읽고 있는 수가 두 갈래인 것은 현재의 권력자 노무현과 소위 친노 세력에 대한 마지막 선택(영남신당)의 향배?를 점치는 것이고 다음은 노무현 그룹과의 화학적 융합을 거부하는 제 정당들의 차후를 기약하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난관을 읽고 있는 느낌이다.

 

그것이 소위 대선 후에 목표를 둔 정치적 선택인 강요 아닌 강요가 될 수도 있음이 다분한  제 정당들을 유혹하는 소통합일 수도 있다는 가정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은 더 절박함에 호소적 훈수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일 게다. 훈수와 발악의 사이에서 김대중의 노출은 그래서 대 발악적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훈수를 둘 者가 없는 것이 문제요 그런 방법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의 위기를 타파할 뾰족한 묘안을 가진 해법 또한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 문제 때문에 두 손 들고 백기투항 하는 선거라면 그 또한 정치적 자살이다. 그 자살을 방지할 목적의 목표가 한반도 평화와 올곧은 역사의 완성, 그리고 온전한 국가의 지향 점의 완결을 염려한 훈수인 것이 분명하다. 훈수를 두면서도 김대중 전대통령이 가장 큰 난관을 느껴야할 장애가 또한 권력을 가진 노무현의 힘이다. 그 향배를 복선에 깔고 훈수를 둬야하는 심정 또한 오죽할리 만무하다. 혹자는 분열이 한창일 때 김대중의 책임과 원성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대중의 법적인 힘은 권력을 이향한 후에는 소멸하는 것이다. 그 소멸을 미끼삼아 힘을 사용한 정치적 부량아들의 분열을 물끄러미 쳐다볼 수밖에 없는 위치가 전직 대통령 김대중일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었던 현실이었다. 지금 발악이라는 욕설 앞에 서야할 만큼 훈수가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대통합과 소통합의 수 갈래의 상충 앞에서 달리, 12월의 승리를 담보할 명약이 있다면 훈수는 분명 필요 없다. 그러나 훈수가 필요한 궁지로 내몰리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 문밖을 넘나드는 발밑에 훈수를 두며 욕을 먹어야할 만큼의 절박함이 그를 자유롭게 놔두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대통합의 굴레 속에 말이다. 

 

[중도개혁 통합의 힘 뉴민주닷컴 http://newminj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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